1.
잠들기 전에 애랑 남편이 나를 두고 싸웠다.
남편이 먼저
"엄마는 내 꺼야. 너 잠깐 빌려준 거야. 장기 대여."
하고 말했다. 그러자 애는 침대에 누워서 구르면서 마구 남편에게 화를 내었다.
남편이 "너 왜 이러는 거야?" 하니 애가 그런다.
"아빠가 먼저 그랬잖아아아아아!!!!!!!!"
마구 화를 내고 엄마를 자기 침대에 누우라고 한 다음에
남편은 아빠 자리에 누우라고 했다.
남편은 서러워 했다.
외로워서 몸서리 치던 날들이 있었는데
나의 행복은 이런 모습이었구나.
하루 하루가 소중하고 가족이 함께 있는 시간이 행복하다.
내가 만든 가족이 내게 기쁨을 준다.
작은 아이가 침대 위에서 걸어 다니면서
온 몸으로 엄마가 좋다고 말해주는 것이 큰 행복이다.
내게 행복을 주는 장면이 머릿속에 남아 있을까 계속 기억할 수 있을까.
순간 순간이 너무 금방 지나가 버리네.
2.
요새는 애가 아빠가 뭔가를 해주는 게 마음에 안들면
나더러 그걸 아주 처음부터 다시 하라고 한다.
비타민을 남편이 주려고 냉장고에서 꺼내었는데
그게 싫다고 난리 난리.
내가 그 비타민 병을 받아 들어도 싫다고 난리 난리.
냉장고에서 꺼내는 척 하는 것도 안되고
냉장고 문을 닫고 다시 열어서 비타민을 꺼내어 달라고 했다.
어린이집 앞에서 내리느라 늘 하듯이 아기가 탄 쪽 차 문을 남편이 열었는데
"엄마가아아 엄마가아아 아빠 문 닫어!"
남편이 차 문을 닫고 내가 얼른 가서 문을 열고 아이를 내려 줘야 했다.
요새는 애가 아프다고 생각하고 있다.
감기 같은 것도 아픈 거지만
정신적으로 힘든 것도 아픈 거니까.
어린이집 적응 기간은 아픈 걸로 생각하고
애가 짜증 만땅 부려도 불쌍해 해 주고 있다.
언제나 그렇지만 애가 주는 기쁨도 너무 크고
힘들게 하는 것도 정말 크다.
기쁨도 힘듦도 상쇄 되지는 않고 두 가지가 공존한다.
3.
오늘 어린이집 안 울고 갔다.
목요일부터 가기 시작했으니 오늘이 딱 열 번째 가는 날이다. 만 2주차.
엄마가 신발 벗고 교실까지 데려다 달라고 해서
신발 벗고 교실까지 데려다 주었다.
4.
"생일에 뭐 만들어줄까? 엄마가 미역국은 끓여 줄꺼야."
"오징어! 뽀로로 빨간맛."
"알았어. 엄마가 오징어랑 뽀로로 빨간 맛 해줄께."
아. 소박하다.
미역국에 진미채 볶음만 만들면 되겠다. ㅋㅋ
5.
자기 전에 제나 이야기 하기가 너무 지겨워져서
엄마 다른 이야기도 해주께 하면서 밀가루 반죽 이야기와 도레미 여왕님 이야기를 해 주었다.
모두 번개맨 에피소드 중에 있는 것이다.
그랬더니 애가 반죽 이야기, 도레미 여왕님 이야기를 시킨 다음에
제나 이야기를 해 달라고 한다.
이야기를 돌아가며 하루에 한 개 씩이 아니라
무려 이야기 세 개를 다 시켜서 듣고 자려고 하는 것이다.
"이불 두 개" 처럼 내가 내 무덤을 판 또 다른 사례가 될 것이다.
어제 저녁에는 이야기를 두 개 한 다음에
안 자면 엄마 밖에 나가 있는다고 했더니
할 수 없이 잠이 들었다.
6.
저녁에도 밥 해서 먹고 나면 나머지는 아무 것도 안하고 애랑 딱 붙어 있다.
어린이집 준비물이 갑자기 생각나서
"엄마 잠깐만" 하고 방에 가서 서랍을 막 뒤지고 있던 참에
"엄마! 잠옷에 크레파스 칠했어요!" 하고 애가 쫓아 온다.
새로 입힌 잠옷에 진한 크레파스가 잔뜩. ;;;;;;;
"아오!!!!" 하고 있는데
남편이 와서 크레파스가 잔뜩 칠해진 바로 그 자리를 손으로 들고
열심히 들여다 보면서 "어디 어디?" 한다.
눈 뜬 장님을 구경하는 것 같다.
남편 말로는 잠옷도 노란색이고 크레파스도 노란색이어서 몰랐단다.
잠옷은 연노란색, 크레파스는 샛노란색이고 딱 봐도 크레파스 칠이 잔뜩 되어 있는데
모르는 것이 보고 있으면 매우 재미 있다.
오늘 아침에는 남편이 애 목에 손수건을 감아 주려고 서랍을 열었다가
내 이름을 크게 부르면서 쫓아왔다.
"이런 게 손수건이랑 같이 들어 있었어!!!!!"
남편이 매우 놀라워 한 것은 애 손수건 옆에 늘 들어 있던 애 런닝 넉장 이었다.
남편이 그 서랍을 연 적이 없냐고?
남편이 하루에 한 번 정도는 그 서랍을 열 것이다.
그 서랍에는 애 런닝, 팬티, 양말, 손수건이 들어 있다.
최소한 1년쯤 전부터는?
런닝을 찾아서 입힌 적도 있을 것이다. 그런데 새삼 너무 놀라워 하는 거다.
남편의 놀람에 나도 덩달아 놀랐다.
내가 애정이 있으니 웃지. 애정이 없으면 이게 도대체 뭔 일이겠냐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