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이것도 정리가 되지는 않지만 써보자.
사람마다 행복은 제각각이다.
금메달을 꼭 따야 하는 것도 아니다.
일등만 기억하는 세상이라고 하고, 잘해야 인정 받는다고 하지만
세상에는 아롱이 다롱이가 살고 있고
아롱이 다롱이가 할 수 있는 것에는 한계가 있다.
나는 5년 전에 이곳에서 살기로 결심했고
지금 이렇게 될 것을 알면서도 여기에서 사는 삶을 골랐다.
지금 현재의 사회구조, 경쟁과 실적으로 평가받는 세상에서
여기에서 사는 삶을 고른다는 것이
어떻게 될 것인지 잘 알고 있었다.
그 덕분에 나는 마음의 안정과, 정신병을 물리쳤고,
5년 전의 나와 비교해서 정신적인 안정과 행복을 얻었고
여전히 약간의 불면증은 있지만 밤에 적당히 괴로워 하면 잠들 수 있다.
날 너무너무 사랑해주는 사람이 세상에 태어나서
날 사랑한다고 매일 말해준다.
욕심이 많던 시절의 나는
할 수 있는 것이 많고 지금의 나에 비해 유능했던 것 같다.
하지만 또 빼어나게 잘하지도 않았다.
마음속에는 아직도 욕심이 많던 시절의 내가 있다.
계기만 있으면 불쑥 튀어 나와
지금도 유능한 온갖 친구들 소식을 들으면서
내가 잘못된 선택을 했던 것은 아닌가 생각해 본다.
하지만 그 순간에 다른 선택을 해서 내가
선택1, 선택2, 선택3을 했더라면?
지금도 일적으로 예전에 비해 유능하지 못한 것이지
인간 한 명 분으로서의 나는 힘들어서 헉헉댄다.
날 피폐하게 만들면 또 어떻게든 되겠지.
하지만 그게 날 행복하게 만들 수 있는가?
20세부터 30세까지의 나를 떠올려 보면 절대로 그럴 수 없다는 것을
내가 가진 그릇에 담을 수 있는 몫은 이만큼이라는 것을
이정도만 담아 놓아야 내가 행복하다는 것을 안다.
책을 읽고, 그림을 조금 그려보고,
아이를 사랑하고, 남편과 사이좋게 즐겁게 지내고.
추울 때 따뜻하고, 더울 때 시원한 집에서
흥청망청 사는 것이 즐거움이다.
말도 안되는 수행자와 같은 삶을 살면서
그 삶을 정당화 하면서 살아가야 했던 과거는
피폐와 내핍의 기억과 자국만 남겼다.
그래서 지금 나는
또 다른 선택을 하고
이 선택에 의해 내 미래가 또 달라지겠지.
무슨 선택을 하든지 나를 행복하게 하는 선택을 하지
날 몰아세우는 선택을 하지 않겠다.
2.
정리가 되는 건 아니지만 생각이 정말 많다.
여성인권은 언제나 더 좋아지는 방향으로 간다.
과거로 돌아가면 무조건 나빠진다.
지금 이 말도 안되는 상황이 시간이 지나면 여성 인권이 좋아지는 디딤돌이 되길 빈다.
무지하고 바보 같았고 원래 그런 거라며 암묵적으로 모든 것이 용인 되던 시기가 지나가길.
서검사 인터뷰가 충격적이었던 건
저런 못된 짓의 대상이 여자이긴 해도 '검사'였다는 것이다.
어떤 사람이 경찰을 주먹으로 치면 바로 잡아 넣을 수 있을 것이다.
검사에게 못된 짓을 하면 검사가 바로 기소해 버릴 수 있을 것 같은데
"권력"을 가진 자가 못된 짓을 하면 들이받을 수 없었던 모양이다.
그래서 그 권력은 어디에서 오는가.
사회적으로 계급구조상 높은 곳에 있는 자.
그래서 온갖 종류의 권력에 대해서도 생각해 봤다.
가정 이야말로 계급사회이고
계급의 마지막에는 며느리가 있다.
가부장적 제도의 우두머리는 아버지고
아버지가 선택하여 권력을 나누어 준다.
할머니, 아들, 고모 같은 본가의 사람이 그 권력을 가지고
딸은 그 아래이고,
며느리이자 엄마는 집에서 최 하위 권력을 차지한다.
권력을 가졌기 때문에
며느리에게는 마음이 상하건 말건
며느리가 원하건 하지 않건 일을 하라고 하고
며느리는 거기에 말대답을 할 수도 없다.
그 덕에 며느리는 판단력을 상실했고 아주 작은 것도 스스로 판단할 수 없게 되었다.
딸이었던 나도 마찬가지.
아빠, 할머니, 고모의 억압에 대항할 수 없다.
조금만 잘못해도
아니 잘못한 것은 하나도 없지만 그냥 고모가 기분이 안좋은 날이기 때문에
고모의 기분을 거스르는 짓을 했다고
고모 앞에서 무릎을 꿇고 앉아
저린 발 때문에 이쪽 저쪽 무게중심을 바꿔가면서
사흘씩 석고대죄를 했다.
이런게 석고대죄라는 걸 티비에 나오는 석고대죄가 바로 내가 하고 있는 것이라는 걸
나중에 알았다. 어릴 때는 매질, 좀 커서는 석고대죄. 가끔 매질.
지금도 내가 제일 어려워 하는 건 남들 앞에서 내 의견을 말하는 것이다.
상대방의 기분을 거스르지 않고 내 의견을 말하는 것이 제일 어렵다.
내 의견을 말하면 욕, 고함, 비아냥,
가슴을 후벼파는 악담이 날아오니 당연하다.
드라마 캐릭터 누구 좋아한다고 이야기 했다가 사흘 혼난 적도 있으니
말을 더해 입 아프다.
고모는 잘못하는 경우가 없고 잘못은 무조건 내가 한 것이다.
할머니에게 온 집안의 에너지가 집중되어 있으므로
나같은 것은 스무살이면 집 나가서 혼자 자립하고 서는 것이 아주 당연하다.
나는 사는데 있어서 조금의 사랑이나 도움을 기대할 수도 없다.
내가 어려움에 쳐해져 있으면 당연히 외면한다.
그걸 왜 이제서야 깨닫는가.
최선을 다해서 노력한다.
내가 키워진 방식으로 애를 키우지 않으려고.
애를 누르지 않으려고.
애가 자기 의견을 잘 말할 수 있도록 도우려고 한다.
정치적인 옳바름에 대해 생각했다.
평등, 민주주의, 자유 같은 가치를 좋아한다.
그런 것이 옳다고 믿었고 다른 사람들도 그것에 동의해 줄 것이라고 생각했다.
아버지는 내 이야기에 늘 동의하지 않았다.
정말 바보처럼 이제야 깨닫는데
아주 작은 파편과 같은 권력이라도
그걸 손에 쥐고 있는 사람은 놓기가 힘든 것이다.
가부장적인 권위, 권력
불평등에서 약자 쪽에 서 있는 자는 평등을 원하지만
아주 작은 권력이라도 강자쪽에 서 있는 사람은 평등을 원하지 않는다.
그래서 아버지랑 정치싸움을 해서 이길 수가 없었던 것 같다.
경상도 가부장의 카르텔.
고집불통인 아버지.
아버지도 켜켜히 묵은 한국 사회의 아주 작은 권력을 놓지 못하는 것이다.
자*당 홍*를 보면 아버지가 겹쳐 보인다.
한국에 태어난 이래로 지금까지
이 계급사회, 권력구조의 최하층에 서 있었고
나이를 먹으며 (나이로 만든 권력구조 최하층 정도에서?)
이제야 좀 벗어나나 싶은 요즘이다.
나이로 권위를 세우지 않으려고 마음먹고 있다.
어린 사람들에게 나이로 권위를 세우지 않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