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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SD0122AUG

Pleia 2016. 8. 22. 11:29

1.

밤에 자다가 더워서 깨보니

남편은 왼쪽에서 굴러와 나를 오른쪽으로 열심히 밀고 있었고

애는 오른쪽에서 굴러와 나를 왼쪽으로 밀고 있었다.

내 넓이가 50센티라면 30센티의 공간밖에 누울 자리가 없었다.

불편하기도 했지만 더워서 땀이 뻘뻘.

잠결에 일어나 몽롱한 정신에 어쩌지? 하다가 침대 아래로 내려가 바닥에 붙었다.

바닥은 시원하구나. 이러고 잠들어서 깨 보니 아침.

 

 

2.

주말에 내가 너무 힘들었다.

애를 안고 있는 걸 더 이상 할 수 없는 때가 되었다.

애는 무거워졌고 나는 늙었다.

애가 내 왼쪽 무릎에 앉아 있으면 왼쪽 무릎이 저리고

오른쪽 무릎에 앉아 있으면 오른쪽 무릎이 아프다.

팔도 허리도 모두 아프다.

이걸 한계가 올 때까지 참고 견디는 나도 문제다.

애를 울리고 싶지 않아서 최대한 해주는데

해주면 뭐든지 더 하려고 떼를 쓰고 우니까 문제다.

 

지난 주 내내 애가 떼를 많이 썼고

나는 계속 달래다가

주말이 되자 쌓인 것이 빡 돌아버렸다.

 

말을 할 수가 없게 되어서

토요일 밤 8시가 넘어서 집을 나가 버렸다.

조용히 집을 나가 이것 저것 사서 들어온 다음

좀 풀려서 말을 할 수 있게 되어 애한테 버럭버럭 하고

애가 잠든 다음 R2 미니 블럭을 조립해서 끝내고

사온 손톱 발톱 스티커도 붙였다.

하도 잘 붙어서 놀랐다.

현대 스티커 기술이 이렇게나 발달해 있다니.

 

 

 

3.

한참 전에 좋은 아내 한국판 드라마를 보다가

"내게 필요한 건 로맨스가 아니라 플랜이야.

난 애들을 버릴 수가 없어.

게다가 나는 남편도 있어."

뭐 이런 종류의 대사를 여주가 말했는데

저 멘트가 너무나 신선한 거다.

"게다가 나는 남편도 있다"니....

 

남편이 있는 것이 그냥 자신에 대한 한 가지 묘사일 뿐이구나.

내가 받은 그 이상한 느낌이 문장으로 표현이 안된다.

내 안에 쌓는 것이 없으니 날이 갈수록 표현이 말라간다.

 

 

 

4.

남편이 과에서 내다 버린 소파 두개를 주워서 연구실에 가져다 놓았다.

그리고 집에 있던 테이블을 연구실에 가져다 놓았다.

사고 나서 내가 엄청나게 좋아하던 테이블이지만 

거실에는 놀이 매트가 깔려있어 도저히 테이블을 놓을 수 없다.

쿠션도 하나 사서 가져다 놓았다.

남편 연구실에 들어가 보기만 해도

삶의 질이 갑자기 확 높아진 느낌이다.

진작에 샀으면 좋았을 껄.

 

소파는 10년 된 것이라는데 디자인은 오히려 요새 분위기가 물씬...

옛날에는 그냥 직각 모양 검정색 구닥다리였을 것 같은데

요새는 하도 검정색 흰색 회색 미니멀 디자인을 좋아하니

하나도 구리지 않다. 이상하다.

 

소파를 버린 곳에서 새로 샀다는 소파랑 테이블을 일부러 구경 갔는데 

오히려 더 옛날 학교 연구실이나 교장실 분위기가 나서 내 느낌엔 이상했다.

 

요새 인테리어 좋아해서 잡지랑 사이트 보는 걸 좋아하는데

눈이 자꾸 바뀌어 대니 최신 유행을 알게 되는 게 무섭다.

 

 

일요일 아침 카트를 가지고 집으로 와서

테이블을 싣고 남편 연구실 까지 나르는데

애가 카트 밀고 가는 걸 좋아서 죽을라 그랬다.

카트 위에 엎어 놓은 테이블 다리를 붙들고 밀고 가면서

"너무 재미써" 하면서 갈갈갈갈 넘어가더니

나중에는 거기 올라 앉았는데

하도 행복해 보여서 기분이 진짜 좋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