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SD0114AUG17
딸의 놀이 형태가 지난 주말을 기점으로 확 변했다.
그 지난 번 주말까지도 이렇게 놀지 않았는데
이번 주말에는 완전 새롭게 논다.
1.
내가 머리를 말리고 있을 때
롤 빗과 드라이기로 (이건 장난감 아님.) 내 머리를 말려주었다.
"미장원 이예요!" 하고 말하더니
계속 존댓말을 썼다.
2.
애 친구 엄마가 선물했던 원목 화장도구 셋트가 있다.
파우더, 아이섀도, 립스틱, 매니큐어, 머리 방울, 헤어밴드, 향수가
원목으로 만들어져 있고 전부 핑크색.
무지무지무지 이쁜데 애가 거들떠도 안보아서
아 정말 엄마 눈에 이쁜 장난감을 애는 왜 안가지고 노는 건가!
생각하곤 했다.
갑자기 이걸 가지고 나와서 자꾸 들고 다닌다.
어제는 화장하는 내게 와서
"나도 의자를 갖다 줘!" 하고 말했다.
식탁 의자를 가져다 줬더니
거기 앉아서 나랑 똑같이 한다.
아이섀도 팔레트에서는 브러쉬를 꺼내서 눈썹을 그리고 ㅋㅋ
립스틱도 바르고 내 아이섀도우도 골라주고 난리다.
내가 침대에 누워 있었더니 화장 가방을 통째로 들고와서
누워 있는 나를 아이섀도 발라주고, 파우더 두드리고,
매니큐어 손톱에 칠하고, 너무 즐겁게 논다.
아빠도 화장해 준다.
오늘 아침에도 눈 뜨고 나니 다른 것 안 하고
화장 가방을 들고 화장하는 내 옆에 앉아서 똑같이 화장을 한다.
처음에는 파우더통을 왼손에 들고 오른손에 든 퍼프로 얼굴을 두드리더니
내가 파우더를 오른쪽 옆 화장대에 놓고
화장할 때 쓰는 좀 잘 보이는 큰 거울을 손에 들고 들여다 보며 파우더를 바르자
엄마를 잘 쳐다본 다음
파우더를 똑같이 오른쪽에 잘 두고
자기 화장품 파우치에 있는 거울은 왼손에 들고
파우더 퍼프 홀더에 손가락 세개를 잘 끼운 다음
내가 하는 행동을 복사한다.
내 화장대에 있는 머리 마는 것, 스킨 샘플, 로션 샘플을 받아가서
자기 화장 가방에 소중하게 넣었다.
마트 갈 때도 "엄마, 나 한 개만 가져갈께." 하더니
파우더를 손에 들고 나가서
자꾸 열었다 닫았다 퍼프를 세 번이나 떨어뜨렸다.
오늘 아침에는 어린이집 갈 때도 파우더를 가져 갔다.
퍼프는 곧 잃어 버릴 듯.
그러면 화장품 가게에서 하나 사서 줘야겠다.
3.
소꿉놀이.
내가 한 번 화가 나니
그릇에 계란 후라이를 올리고 포크랑 같이 차려서 주었다.
그 다음번에 소꿉 놀이를 할 때는 정말 웃겼다.
침대 옆 서랍에 내가 출산 후 쓰던 일습의 보호대가 있는데
그걸 꺼내오더니 허리 보호대는 식탁,
무릎 보호대는 의자라고 했다.
식탁인 허리 보호대 위에 큰 쟁반을 놓고
그 위에 계란, 국물을 담은 밥그릇, 요플레, 포도, 숟가락과 포크를 놓아주고
무릎 보호대를 바닥에 깔면서
"여기 앉아서 먹으면 편안할 꺼예요!" 하고 말했다.
"내가 계란 구워 줄께요."
"내가 메밀국수 만들어 줄께요." - 이 말 하면서는 꼭 싱크대 아래에 작은 냄비와 주전자를 가져간다.
"여기 요플레가 있어요. 딸기맛 이예요. 바나나 맛도 먹을래요? 맛있어요."
내가 "매운 고기 주세요." 하면
"매운 고기는 없어요. 좀 안매운 고기는 있어요." 하면서 주황색 색종이를 접어서 그릇에 주었다.
'역할놀이'를 하기 시작했다.
이걸 애들이 좋아하고 일곱살 까지도 주방놀이며 병원놀이 잘 가지고 논다고 해서
사주었더니 그 동안은 전혀 가지고 놀지 않았다.
안 가지고 논다기 보다는 딸랑이랑 똑같이 취급 받았다.
역할놀이 장난감이 역할놀이에 쓰이는 것이 아니라 두드리거나 흔들어 보거나
다 꺼내어 보거나 하는 용도로 쓰였다.
40개월이 되니 이걸 제대로 이용해서 어른들 흉내를 낸다.
이야기도 나누고 그 곳에서 쓰는 말도 사용한다.
어디서 보고 와서 기억하고 있다가
엄마를 흉내내는 것을 좋아하는 것이다.
어쩜 저렇게 고대로 흉내를 내는지 이뻐 죽겠다.
애를 지금까지 키우면서 요새 제일 이쁘다.
그동안도 예뻐 했지만 요즘은 애한테 사랑받고 있는 것이 느껴져서
정말 좋다. 그동안은 애가 날 좋아해도 표현하는 것이 한 방향이라
애야 엄마 없을 때 울고 떼쓰고 하기만 하더니
지금은 내가 이뻐하는 것보다 더 많이 날 좋아한다.
내 말도 정말 잘 듣는다.
일요일 오후에는 남편은 낮잠 자고
나는 색연필 가지고 식탁에 앉아 그림을 그렸다.
애도 내 옆에 딱 붙어 앉아서 (정말 몸 한부분을 부착하고 있어야 한다.
보통 계속 내 몸 한쪽을 자기 몸으로 꾹 누르고 있다.) 내가 그리는 것과 똑같은 그림을 계속 그렸다.
난 만화책 일러스트 따라 그리는 책 사와서 캐릭터 그림을 그렸고
"00는 앞머리가 눈을 가리고 있으니까 머리카락이 이렇게 눈을 가리고 한쪽 눈만 그렸어." 하고 말하면
애가 얼굴에 눈 두개, 웃는 입, (엄청 중요!) 팔, 다리를 길게 그려 놨다가
갈색 색연필로 내가 말한 쪽 눈 위에 색칠을 했다.
나중에는 자기 손을 잡고 그림을 그려 달라고도 했다.
예전에 웃는 입이 안그려 진다고 애가 속상해 해서
몇 번이나 내가 그려주고 연습시켰다.
지금도 그냥 일자로 그린 것 같은데
옛날이랑 다른 건지 애는 웃는 입이라고 만족한다.
남편이 낮잠에서 일어나 겨우 쬐끔 해방되어 화장실을 갔는데
곧바로 따라와서 "엄마 뭐해?" 하고 문 두들기고
밖에서 기다리다가
내가 화장실을 나가면
나를 두 팔로 끌어 안으면서
"엄마 보고 싶었어!" 하고 감격해서 외친다.
화장실에 1분쯤 있었는데
도대체 무슨 정신과 시간의 방인가.
귀엽고 이쁘고 이상한 세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