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SD0111SEP17
주말이 힘들었다.
애랑 싸운 것도 아니다.
밥, 청소, 빨래, 설거지도 정말 최소한으로만 했다.
거의 외식하고, 배달음식 먹고,
육아서는 또 마음에 쏙 드는 것을 사서
토 일 걸려서 2/3권을 읽었다.
이정도면 훌륭한 주말이긴 한데
8월초 정도부터 시작해서 계속 쌓이는 피로가 가시지를 않는다.
9월 첫주는 내가 마감인 일이 있어 주말 내내 벼락치기를 했고
9월 둘째주인 이번 주말은 남편이마감인 일이 세 개쯤 있어서
내내 벼락치기를 하느라 바빴다.
첫 주는 남편 독박 육아, 이번 주는 내 독박 육아.
남편은 금요일 서울 출장, 월요일 부산 출장,
이번 주말부터는 일주일 중국 출장.
나는 아하하하 광ㄴㄴ이 모드다.
티비도 적당히 보여주고 애가 딴 짓하고 가만 있는 것도
그냥 내버려 두었다. 키즈카페도 두시간 데려가서
두시간 동안 트렘펄린 쉬지 않고 뛰도록 내버려 두고
난 CCTV 모니터만 지켜보면서 구석자리에 앉아 맘에 드는 책만 읽었다.
그래도 피곤하다.
기본적인 애 뒤치닥꺼리도 잔뜩이고
애는 잘 놀다가도 내 무릎에 올라와서
입으로 "응애 응애 엄마 엄마" 하면서
아기가 되어 애교 백만개를 부려야 직성이 풀린다.
그럼 난 아기를 아기 이불로 잘 싸서 끌어 안고
만지작 만지작 하면서 예뻐해 줘야 한다.
인형 데리고 엄마놀이, 소꿉놀이 하는 것을 좋아하기 시작했다.
주방 놀이는 1년 전이 아니라 지금 샀어야 했다.
(하지만 내가 즐거웠으니 괜찮아. ㅎㅎ)
하지만 꼭 엄마 놀이 할 때 인형한테 뭐라고 이야기를 한 다음
나를 쳐다 보면서 "엄마 말 시켜줘!" 한다.
인형의 대답은
엄마가 더빙해 줘야한다.
그동안은 자기를 가리켜 엄마라 하지는 않았는데
어제는 옥토넛 친구들의 엄마가 되었다.
여행 가방을 가져와서 펼쳐놓고
한 쪽에는 친구들을 태우고 음식 만들어 접시에 담아 펼쳐두고
여행 가방 물건 쏟아지지 않게 하는 벨트를 채워 놓고
앞에는 여행 가방 설명서를 놓아 두고 티비라고 했다.
"자 밥 먹고 목욕 잘 했으니 백오십번 (디즈니 채널) 한 번 보자~"
그러고 자기는 여행가방의 다른 쪽 반에 탄 다음
운전을 했다.
처음에는 서울을 간다고 하더니 다 같이 내렸다가 다시 타면서
"여기 맛있는 거 많아. 맛있는 거 먹으면서 다른 서울도 갈꺼야." ㅋㅋㅋㅋ
난 네비 역할도 맡았다. 좌회전 입니다. 하고 말하면
애가 작은 설명서를 왼쪽에 놓고 왼쪽으로 돌아 앉았다가
내가 우회전 입니다. 하면 오른쪽으로 돌아 앉는다.
뭐 이리 귀여운 생명체가 다 있나
운전 끝나고 차가 된 가방에서 내리면서 말한다.
"그래. 엄마가 지도를 잘 보니까 잘 올 수 있었어."
이건 남편이 운전을 마친 내게 종종 하는 말인데 이 문장을 통채로 써먹어서 엄청 웃었다.
애가 세 살 때와 네 살 때를 분명하게 구분해서 기억하고 있는 것이 엄청 웃기다.
애가 "나 세 살 때" 그리고 "나 네 살 때" 라고 시작해서 한 이야기 중에
지금까지 틀린 것이 하나도 없어서 좀 놀랍다.
이게 분간이 가는 것이 신기하다.
이 무렵 일은 기억도 못하고 뒤죽박죽일 줄 알았는데.
어젠 자면서 내가
"어린이집 가 있으면 엄마가 여섯시에 데리러 갈께" 했더니
"왜 그렇게 늦게 와?"
"엄마가 맨날 여섯시에 데리러 가잖아."
"나 세 살 때는 엄마 6에 왔잖아."
이건 다섯 시 30분을 가리키는 말이다.
30분이면 바늘이 6에 가니까 하는 소리.
정말 똑똑이다. 올해는 내가 일하는 시간을 30분 늘렸고
작년보다 30분쯤 늦게 데리러 간다.
하지만 난 다 알아 들어 놓고 모르는 척
"6이 여섯시잖아. 여섯시에 데리러 갈께."
대답 하고 속으로만 뜨끔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