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SD0129JAN18
1.
아침에 아기는 엄마에게 뭔가 도움을 주고 싶었을 것이다.
엄마가 커피 마신 후 뒷정리를 하고 치우는 사이에
엄마가 패딩을 안 입고 의자에 놓아두고 간 것이 보였다.
"엄마! 이거 이거!" 하면서
엄마가 자리에 놓아둔 패딩을 들고 엄마에게 쫓아 온다.
내 눈으로 보면
아이가
눈이 와서 눈+흙의 진흙발자국으로 어지러운 커피집 바닥을
새로 사서 마음에 쏙 드는 내 패딩, 새 패딩에 달린 마음에 쏙 드는 털로
닦으면서 쫓아 오고 있다.
애는 패딩을 들었지만 패딩이 너무 길고 크니까
바닥에 질질 끌리는 것이다.
의도가 좋은 것은 잘 알겠지만 하는 일이 너무 서툴다.
하지만 이 시점에서 나무라면 애가 삐진다.
삐지고 화를 낸다.
시간이 있다면 최대한 좋게 이야기를 할 수 있지만
뭔가 급하거나, 다른 사람이 엮여 있거나
당장 수습을 해야 하거나 해서
좀 말이 날카롭게 나오면
애가 완전히 삐지고 내게 화를 낸다.
아침에야 그냥 내 패딩이라
"응응" 하고 쫓아가서 애한테서 패딩을 받아 들고
그냥 꿀꺽 내 나쁜 마음을 한 번 삼켰다.
난 애한테 화가 나는 걸 하루종일 참고 있는 편이다.
순간 순간 내 대처능력이 무척 낮고
일이 일어난 후에야 어떻게 할 지 생각해 본 다음에
다음번에 그런 식으로 대응하지 일이 일어난 순간에 내 뇌가 할 수 있는 건
겨우 겨우 악 소리 내지 않고 참는 정도?
이런 순간에
"어른 말을 들어야지!" 하고 권위를 내세우면서 말하지 않으려면
어떤식으로 문제를 해결해야 하는 걸까.
나한테 체화되지 않은 방식으로 문제를 해결하려고 하니
늘 어렵다.
2.
지금도
내가 태어나고 자란 집을 떠올려 보면
가부장적인 집에서 권력의 최정점에 있는 건 아버지.
아버지가 보살펴야 하는 건 아버지의 가족. 내겐 할머니와 고모.
아버지의 자식과 아내는 우선 순위에서 매우 떨어져서 보살피지 않는다.
특히 딸은 출가 외인이다.
기형적이고 뒤틀려 있다.
이상한 세상에 태어나고 자랐고 벗어났다.
난 내게 주어진 틀 안에서 최선을 다했지만,
내 의지와는 아무 상관이 없었다. 지금도 아주 오래된 규범 안에서
내가 사는 것과는 완전히 다른 세상이 굴러가고 있다.
많이 벗어났지만 완전히 벗어버리지 못한 굴레.
3.
걱정도 많고 번민도 많다.
미래를 앞당겨 걱정하고, 잠을 이루지 못하고
과거를 떠올려 괴로워 한다.
거기서 벗어나서 지금 현재만 생각하면
살면서 제일 행복하지 않나 싶은데.
씀씀이가 커져서 걱정하고
뭘 엄청나게 사는 건 아닌 것 같은데
살 때 가격표를 보며 갈등, 고민하거나 걱정하는 것 없이
일단 먹고 싶은 걸 카트에 다 담는 것이
씀씀이가 커진 것이다.
지금 이 순간 이걸 아껴서 저금하는 것이 좋은 것은 아닐까
뭐 그런 생각들을 한다.
도저히 여기서 생활비를 더 줄이지 못할 것 같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하나.
줄이고 싶은 마음이 있긴 한거냐.
다시 예전으로 돌아가려면 어떻게 해야하지?
하고 예전 가계부를 펼쳐서 들여다 보아도
별 뾰족한 수를 찾지 못하겠다.
그냥 이러고 살자. 한참동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