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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SD0124APR18

Pleia 2018. 4. 24. 11:20

1.

딸내미랑 붙어 있어야 했는데

남편이랑 잠깐 친한 척 했다가 애가 삐졌다.

이불을 뒤집어 쓰고 앉아서 씩씩 대더니

침대에서 내려가 쪼그리고 앉았다.

어쩌지? 달래나? 이러다가

"아빠 배꼽에 바람 불까?" 하니까

좋아서 우끼끼끼끼 같은 소리를 내면서

침대로 쫓아올라 왔다.

애가 속상해 있을 때 애가 좋아할만한 것을 찾아내면 기분이 좋다.



지난 주에는 매일 되풀이되는 일상인

애가 '씻기 싫다 아빠랑 안씻는다'를 하고 있는데

내가 여행 갔다 숙소에서 가져온 일회용 비닐 샤워캡을 꺼내서

"이거 쓰고 샤워할까?" 했더니

짜증가득, 울고 있던 딸내미 얼굴에

갑자기 벙싯 하고 웃음이 지나갔다.

아직 아기라 입꼬리 가득 지나가는 웃음을 숨길 수가 없다.

그러면 내가 또 웃겨서 웃는다.

샤워캡 쓰는 건 뭐가 그리 재미 있는지 어제는 샤워캡을

한꺼번에 두 개 쓰고 샤워하고 신나하였다.


2.

피곤이 몰아 친건지 애 재우다가 남편도 나도 자버렸다.

목요일날 소풍가니 도시락 싸주려면 장을 보러 가야하는데 그걸 못 가고 있다.

오늘 못 가면 남편은 수목금 출장이고

짬이 안날 수도 있다. 꼭 장보러 가야지.



3.

애랑 데면 데면하게 키울 수도 있을 것이다.

옛날 아빠가 된 것처럼

나는 돈을 벌어오고, 내 직장에 매진하고,

그걸로 부모 노릇을 하는 거다.

하지만 애랑 조금의 애착을 쌓고

애가 어떤 모습으로 성장하고 있는지 보고

애한테 관심을 기울여 주려면 직장에 매진할 수가 없다.

반 반 하는 거다.

내가 예전에는 내 능력 중 10을 일에 쏟았으면

지금은 6은 아기에, 4는 일에 쓴다.

그러면 애는 순수하고 엄청난 양의 사랑을 내게 준다.

지금의 내게 이건 엄청난 기쁨이다.

지상에 내려앉아 삶을 살게 만들어 주는 끈이 되고 보람이 된다.

육아는 일하는 만큼, 아니 그보다 더 어렵다. 그래도 기쁘다.

계속 궁리해야 한다.

잠결에도 내내 애의 방과후 활동을 생각하고 있었다는 걸 잠에서 깬 직후엔 알 수 있다.

조금 어이 없고 그런 내가 우습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