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지난 주 목요일이던가.
남편은 땀 많이 흘렸을 애 목욕을 시키고
나는 그 사이에 밥상을 차렸다.
수저 놓고 된장찌개, 조개 많이 들어간 전, 고기, 그리고 뭐더라?
이렇게 차리고 오라고 불렀더니
애가 쪼르르 와서 식탁을 보고
"엄마가 멋지게 잘 만들어따아!"
하고 감탄을 했다.
애 말투가 웃겨서 빵터졌다.
어린이집 선생님한테 배워온 말투인 듯.
딱 고대로 배워서 써먹는데
말은 잘하는데 엄청나게 엉터리다.
"내가 여자야!" 그러길래
"우와 우와 유슈이 여자야? 엄마는? 아빠는?"
하며 아이의 새로운 지식에 감탄해 주었는데
애의 그 다음 말은
"나는 남자! 엄마는 남자!" 였다.
어쩌라고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만들기 놀이 책을 사서
거기 들어있던 가위를 줬더니
"가위가 너무 예뻐!"
"가위가 너무 예뻐!"
"가위가 너무 예뻐!"
하고 계속 감탄을 한다.
뭐 그리 새로운 가위라고 그 아름다움에 기가 막혀 하는지
늙은 나는 알 수가 없다.
상어 만들기를 하고
함께 들어있던 조개를 상어에게 주면서
"껍데기를 벗겨서 먹어야돼 상어야"
해서 웃었다.
하여간 들은 소린 다 써 먹는다.
"엄마 보면 너무 귀여워. 엄마 보면 재미써" 이런 소리도 하고.
친구 애서랑 노는데
친구가 우리애한테
"유슈이는 애서꺼야.
유슈이는 애서 딸~"
하고 있어서 엄청나게 웃었다.
"니들 말은 잘하는데 내용은 다 틀렸어.
정말 아는 게 없구나" 해주었지만
귀여워서 심장이 쪼그라드는 (심쿵!) 기분이었다.
2.
또 생각 하는 것.
예전에는 잘 못 먹고 살아서
먹을 것이 생겼을 때
그걸 애한테 먹이는 것이 엄청 중요했겠지.
고루 고루 잘 먹이는 것.
공부를 시키고 책을 많이 읽히고 하는 것도 중요했을 것이다.
이걸 하라고 애를 혼내고 싶지 않다.
애랑 사이가 나빠질 만큼 중요한 일이 아닌 것 같다.
이것도 닥치지 않아서 하는 입 바른 소리일 수도 있다.
10년 후의 나는 엄청 무섭게 애를 잡고 있을 지도...
안 그랬으면 좋겠다.
혼내는 건 버릇이 없거나
남을 괴롭히거나 폐를 끼치거나 할 때.
짜증 부리고 울고 말 밉게 할 때
달래 주지 않고 다 울고 와서
예쁘게 다시 말하라고 시키고 있다.
내가 읽기 제일 좋은 글은 내가 과거에 썼던 글이다.
예전 블로그 다시 들어가서 좀 읽은 적이 있는데
기억이 새록 새록 감정이 새록 새록
게다가 과거의 내가 적어둔 내용은
지금 내가 꽤 공감이 가고 의견도 나랑 같다.
그래서 재미있고 우습다.
7월 내내 글 쓰기만 해 놓고 퇴고 할 시간은 없었다.
맞춤법과 문장이 엉망인데
쌓여 있군.
3.
여름 들고 왔다 갔다 하며 바지를 네 개나 샀다.
엄청난 거다. 인생 최대의 쇼핑.
원래 두 개가 있었기 때문에 바지가 총 여섯 개가 되었다.
그동안은 바지는 봄 가을은 무시하고
여름/겨울 현역인 바지가 두 벌 씩만 있으면 된다고 생각했다.
딱 입을 수 있는 것 두 개에
그 전에 입던 살짝 낡거나 이상한 것도 더해서 입으면
그럭 저럭 한 해 나기에 무리가 없었다.
예전에 미국에서 입던 바지를 정리해 보니
전부 청바지, 청치마, 면바지도 좀 데님 느낌 나는
식이었다. 지금은 전부 입을 수 없지만
버리기엔 또 소울이 느껴져서 정리해서 쇼핑백에 넣어두었다.
하늘하늘한 통 넓은 바지 - 이거 입을 땐 정말 신난다.
스키니진 유행이 지나간 것도 기쁘고 이런 재질에 촉감의 바지가 있어서
엄청나게 기쁘다.
지나가다 마네킹이 입은 것만 보고 치마인 줄 알고 인터넷으로 지른 바지
-입어봤으면 절대 안 질렀을 텐데 모르고 샀다.
내가 그동안 사던 스타일이 전혀 아닌데 너무 마음에 든다.
반바지 두 개 - 완전 맘에 든다.
그동안은 한 개 빨면 한 개 입는 식으로 살았는데
지금은 색상과 모양을 맞춰서 입고 있다.
너무 다른 인생이다.
4.
입 방정이 될 까봐 미심쩍지만
얼굴에 더 이상 여드름이 나지 않는다.
1년만에 여드름 나는 것이 멈추었다.
여드름 나기 시작한 후
한 달 씩 화장을 아예 안 한 적도 있고,
파운데이션도 계속 바꾸고,
베갯잇도 계속 깨끗하게 쓰고,
병원도 가 보고 (약 먹은 건 너무 심할 때 가서 띄엄 띄엄 다 합쳐서 3주 밖에 안되지만...)
결국 끊어야 하는 건 카페인과 밀가루인가.
그럼 완전 불가능인데 하고 있었는데
갑자기 여드름이 안 난다.
그러고 보니 지난 1년간
엄청 큰 용량의
헤어영양제를 린스처럼 한 통 썼다.
인터넷에서 보고 샀는데범인이 그거였던 것 같다.
가격도 엄청 싸고 양은 엄청 많고 마음에도 들었다.
머리가 부들부들.
얼마 전에 다 썼고 한 통 더 살까 하다가
집에 있는 쓰던 남은 린스 다 처리해 버리고 빈 통 다 버리고 사려고
안 샀는데 그 후로 "여드름 새로 나기"가 멈추었다.
아주 놀랍게도.
(이러다가 다시 날 수도 있지만.)
아니 왜 의심할 생각도 못했지?
머리에 바르고 헹궈내는 거라
얼굴에 영향이 갈 줄 몰랐다.
그러고 보면 두피에는 여드름이 안 나고
몸에도 안 난다.
머리카락에서는 완전히 제거된 것이 아니니까
얼굴과 목에 머리카락이 닿으면
그 부분에 여드름이 나고 있었나 보다.
평생 이러고 살아야 되나 싶더니
여드름이 안 나서 너무 너무 기쁘다.
그동안은 너무 아프고 불편하고
늘 신경 쓰이고 했는데...
아 진짜 바보탱이
멍충이 아줌마다.
얼굴에 남은 여드름 자국은 엄청나지만
그래도 이번 체험으로 알게 된 것이 있고
이 정도로 끝난 것에 만족한다.
난 앞으로도 마트에서 린스나 사서 쓰는 걸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