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이렇게 무더운데.
밤에도 더워서 잠을 잘 수가 없는데
아침에 커피집 앞에서 주차하고 차에서 내렸더니
주차장 벚나무 잎에 노랗게 물들고 떨어지기 시작했다.
하늘에는 하얗고 예쁜 반달이 떠 있었다.
맙소사. 이게 뭐하는 짓인감.
절기상으로는 맞지만
이렇게 더운데도 단풍이 들다니
온도랑 단풍은 상관이 없나보다.
밤에 자다가 더웠는지
눈을 떠보니
나도 모르는 사이에 방 바닥에 누워 있었다.
잠결에 굴러 내려간 모양이다.
난 왜 맨날 자다가 더우면 쫍은 자리에 몸을 끼우고
다리도 안 펴고 등만 시원하게 해서
자려고 하는지 도통 모르겠다.
눈을 뜬 이유는 당연히
자다가 깨서 엄마가 없음을 알아챈 아기가
침대에서 내려와 나를 찾아 온 다음
"(으잉잉잉) 엄마 안아줘" 하며
내 몸 왼쪽 위에서 오른쪽 위로
몸을 날려 굴러댕겼기 때문이다.
"(으잉잉잉) 엄마 배꼽으로 안아줘" 하면서 내게 왔다.
잠결에 으어어어 하면서도 엄청 다정하게
"그래 그래" 하고 말해줬다.
왼쪽 팔베개 해줬다가 배 위에 올려서 안아줬다가
오른쪽 팔베개를 해 주었다.
애가 "엄마 뽀로로 주스 먹고 싶어" 한다.
"엄마 몸이 안 움직여. 아직 잠이 들깼어."
"뽀로로 주스 먹고 싶어 잉잉잉"
"엄마 물 먹을껀데 물 먹을래?"
"응 물 먹을래"
해서 거실에 나와서 나도 물 먹고 애도 컵에 물을 따라 주었다.
침대에 애를 올려 놓고 시계를 보니 새벽 3시.
에어컨을 켜 놨는데도 너무 더운 것이었다.
에어컨 온도 낮출 생각은 잠결에 못하고
너무 더우니 에어컨 끄고 창문이나 열어볼까 -_-;;;
하며 창문 열고 선풍기 켜고
침대로 가서 애를 안아주니 애가 무진장 좋아한다.
2.
퇴근길에 갑자기 비가 억수같이 쏟아졌다.
애 픽업을 하는데 비가 어마 어마하게 쏟아졌다.
"비가 와. 비가 와. 비가 많이 와. 비가 오네" 하던 애가
지하 주차장 들어가는 순간 "비가 뚝 그쳤네" 하고 말했다.
막 웃었다.
저녁 먹으면서
"계란 맛있어?" 하고 물으니
"조금 뜨겁기도 해" 하고 대답
이건 또 어디서 배운 말투인가
하도 멀쩡하게 말해서 내가 감동 받았다.
자기 전에 "더잘난이 번개맨 옷 입은 이야기" 를 열 번도 더 했다.
처음에는 재미있었는데 나중에는 으어어어 싶어서
딴 이야기를 암만 시켜도 하지 않고 더잘난 이야기만 반복했다.
남편이랑 나랑 재미있는 이야기를 하는데
중간에 끼어들어서 더잘난 이야기를 또 했다.
자기도 너무 이야기를 하고 싶은 것이다.
그래서 갑자기 애 한테 퀴즈를 내어 보았다.
첫 문제는 "엄마 가방은 무슨 색일까요?" 하니
"몰라~" 한다. 그래서 남편한테 대답해 보라고 하니
남편이 "빨간색" 하고 대답했고 애는 뭘 하는지 알았나 보다.
"번개맨 옷은 무슨 색일까요?"
"파랑색!"
"아기 돼지 삼형제 집에 와서 후 하고 분 것은 누구일까요?"
"늑대!"
"얼음과자 먹으면 어떻게 되지요?"
"배가 아파요"
묻고 답하기가 되는 것이 너무 신기하고.
질문을 이해하는 것도 신기하고.
너무 잘 맞춰서 대단.
애가 "몰라~" 하는 걸 아빠가 맞히면
"유슈이가 맞춰야지이이!" 하고 화낸다.
마지막에 잠이 들 때는
"두 개 필요해" 하면서 내 손을 두개 다 가져가서
하나는 베개로 쓰고 하나는 꼭 쥐고
엄청 마음이 놓인듯 잠이 든다.
3.
집에 와서 어린이집 친구 이야기를 하면
나무라지 않고 무조건 다 칭찬해 주고
편들어 주기를 하고 있다.
애가 어린이집 이야기를 하기 시작한 지 며칠 되지 않았고
난 어린이집 이야기가 너무 너무 궁금하니까.
이야기를 한 개만 들어도 좋다.
어제는 집에 오더니
"션 이가 물 내려버려써." 하고 말했다.
밑도 끝도 없는 이야기지만
금방 알아 듣고
"유슈이가 쉬 했는데 션이가 물 내려버렸어?" 하고 물으니
"응" 한다.
"션이 나빠!" 하고 덧붙였다.
저런 일에 얼마나 속이 상했을까 생각하니 웃기다.
애는 속상한데 난 그냥 마구 웃긴다.
속으로만 ㅋㅋㅋ를 백만개 띄워놓고
어이구 "션이 나쁘구나" 맞장구를 쳐 주었다.
4.
아침에 남편이 더치커피 마시고 냉장고 밖에 두었다.
출근준비 끝내고 눈에 띄길래 냉장고에 넣는데
냉장실 매직스페이스 음료 칸에 식빵이 들어 있었다.
식빵은 보통 냉동실에 둔다.
"이거 여기 두면 안 되는데" 하고 말하고 남편을 보니
남편이 "그거 거기 들어있었어." 하고 말한다.
내가 ?????? 하며 "아침에 구우려고 꺼낸 거 아냐?" 하니
"응. 그거 꺼내고 내가 안 넣었는데 거기 들어있길래,
네가 거기 넣은 줄 알았어.
그래서 식빵을 냉동실에 안 두고 여기다 두네 하고 그냥 둔거야."
그럼 범인은 아기다.
도대체 거기 문은 어떻게 연 거지?
내 추리에 따르면
남편이 잠깐 냉장고 문을 열었을 때
문이 열려 있는 것을 보고
"앗 내가 뭔가를 넣고 냉장고 문을 닿을 수 있는 찬스다!"
하고 기회 포착을 한 후
얼른 뭐 넣지? 잠깐 생각하고
보이는 식빵을 냉장고에 넣고
문을 닫았나 보다.
애가 깨금발을 하고 팔을 쭉 뻗으면 매직스페이스에는 손이 닿으니까.
아 귀여워.
5.
애 어린이집 생일 잔치가 있는 것이 아침에 생각이 났다.
"잠깐만, 선물 가져올께" 하고 말하고
선물, 메모 잠깐 준비하러 서재방에 갔다.
포장 한 것도 아니고 포스트 잇에 이름만 써서 붙였다.
그 잠깐 사이에 궁금한 남편이 또 쫄쫄쫄 따라 왔다.
애는 아기 의자에 앉으면 혼자 힘으로는 빠져 나오지 못한다.
엄청 따라 가고 싶을 텐데 거기 갇혀 있는 거다.
쫄쫄이 원이 왔는데 쫄쫄이 투는 못오고 식탁에 있는 상황.
"아~ 쫄쫄이! 애 놔두고 또 따라 왔네"
하니 남편이 웃으면서 거실로 다시 돌아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