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어젯밤
애는 집에 가자마자 번개맨을 보겠다고 했는데
나는 세수 하고 봐야 한다고 말했다가.
오늘 아침
번개맨을 두 개째 트는데 "이제 그만!" 하고 껐기 때문에.
두 번 다 애가 울고 불고 떼 쓰고 아빠 저리 가라고 밀고 엉엉 난리를 부렸다.
남편이 없는 동안 계속 티비를 많이 보여준 내 탓이다.
밥 하는 동안, 졸려서 찡찡대는 동안.
하지만 이제 원래대로 돌아와야지.
어제 저녁에는 안방에 넣어 놓고 다 울고 나면 나와.
오늘 아침에는 다 울고 말하면 엄마가 안아줄께.
라고 했는데 애가 하는 것이 우습다.
하도 울고 불고 난리 치면서 눈에는 눈물을 뚝뚝 흘리며
"으아아아아아아 다 으아아 울 으아아 어써"
이런 식이라 애를 거울 앞에 들어다 놓고
"이것 봐. 눈물이 뚝뚝 흐르고 있는데 뭐가 다 운거야."
하다가 숨을 후 하고 내쉬어 보면 좀 진정이 될 꺼라고 했더니
예능프로에서 뜨거운 것 먹고 휘파람 불기 미션 하는 것처럼
"후 후 엄마 후 해써 안아줘어어어어어엉엉엉!"
이러고 있다.
밤에 잘 때는 "엄마 나 쫌 울어도 예뻐?" 하고 묻길래
무심코 "응" 하고 대답했다가
"아니 안 이뻐." 하고 단호하게 말했다.
자기 전에는 온갖 애교를 부려서 날 녹이려고 한다.
잠이 들 때까지 30분에서 한시간쯤 애랑 같이 누워 있는데
애 재우는 이 시간이 지루하고 힘들고 빨리 지나가면 좋겠다는 마음도 들지만
또 온갖 애교에 이쁜 말을 무더기로 들을 수 있다.
- "엄마 우리 누워서 이야기 하자"
- "엄마 만질래" 하면서 날 만지작. "엄마 두 번 만져도 돼??" 하고 물어 보는 것.
어차피 들러붙어 있고 조금만 떨어져도 안아달라고 말할 꺼고
결국 잘 때는 자기 침대에서 내 쪽으로 붙어서 내 쪽에 발 턱 올려놓고 자면서
뭣 하러 두 번 만져도 되냐고 굳이 묻나.. ㅎㅎ
- "엄마 웃어봐" 라고 해야 하는 순간이면 "엄마 웃겨봐" 하고 말한다.
"사랑해!"라고 말하면 꼭 검지를 흔들며 "노노노!" 하고
그게 웃겨서 내가 한 번 크게 웃는다. 그러고 나서 두번째 할 때는 내가 안웃으면
"엄마 웃겨봐" 하고 말한다.
- 이상한 소리를 하면 내가 "우리 애기가 이상한 소릴 하네" 하고 말해줘야 한다.
2.
언젠가 했던 말들
전화기 들고 밥 먹으면 안된다고 했더니
"엄마 맨날 전화기 들고 먹잖아" 우왓 찔려라!
혼자 먹을 땐 거의 전화기랑 먹지.
토토로 컵 들여다 보면서
"메이가 토토로 옆에 앉았어!"
메이는 그려져 있지 않은 토토로 컵이었다.
예전에 딱 한 번 본 토토로 만화와 주인공 이름을 기억하고 있었다.
"어린이집에서 친구 한마리가아!"
"싀유이가 머리삐 없다고 해서어 나는 많다고 해써.
나는 예쁘게 말했는데 싀유이가 짜증부려서 나도 이써!! 해써."
친구랑 싸웠단다. 친구는 머리핀이 없다고 했고 자기는 있다고 했단다.
친구는 어린이집에 울 애가 머리핀을 안하고 왔다는 말을 하고
우리 애는 집에 머리핀이 있다는 이야기를 한 듯.
의사 소통이 안된다.
옹알옹알 말도 잘도 하고 내 귀엔 쏙쏙 들리는데
미국 다녀온 남편은 못 알아 듣는 걸 보고 역시 내 귀에 제일 잘 들리나 보네 했다.
"엄마 우리이 지하 주차장 문 열었으니까 들어가자아"
어제 아침에 나오다 보니 지하주차장 문이 열려 있었다.
보름만에 공사를 마치고 개방한 것이다. 저녁에 들어가면 되겠다 했더니
어린이집 마치고 차를 타자마자 말했다. 기억력도 좋아.
"가위가아 뭐 자를까 하고 이써"
가위를 손에 들고 의인화를 했다.
"번개걸이 도망가서어~" 번개맨 본 이야기를 잔뜩 길게 길게 해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