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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SD0103FEB17

1.
요즘 우리 딸.

시제를 제대로 말한다.
"잠깐만 기다려. 곧 할께.
아직 아니야. 잠시 후에"
뭐 이런 종류의 말을 자유 자재로 구사해서
솔직히 좀 놀랍다.
지난 3년간 배운 거고
이제야 말을 할 수 있는 거지만
엄마된 입장에서는 얼마 전까지도 못하던 거니까 신기하다.

오늘 아침엔
"딱 한번만요!"
하는 말도 했다.

"엔시토리함미"
는 갑자기 또 뭔 소리람.
이 가사로 계속 노래를 부르는데
정체를 알 수가 없다.


2.
아침에 커피 집에 갔다.

사장님이 아기에게
"우리 강아지 이제 몇 살?"
하고 물으니
엄청나게 자신 있게 손가락을 쫙 펴고
아주 또랑또랑한 발음으로
"다섯 살!"
그랬다.

순간 머릿속으로 많은 것이 지나가고 있는 사장님과
옆에서 빵 터져서 미친 듯이 웃고 있는 엄마.

당장 휴대폰 꺼내서 몇 살이야? 하고 서너 번 더 시키고 녹화하고. ㅋㅋㅋ

사장님은 애가 네 살인 걸 알고 물어보셨는데
애가 너무 자신 있게 다섯 살이라고 하니
순간 다섯 살인가 헷갈린 모양.


3.
요샌 또 이야기를 해 달라고 조른다.

자기 전에 이야기를 해 달라고 졸라서 이야기를 길게 해 주고 잔다.
아침에는 눈도 뜨기 전에 먼저 일어난 아기가
이야기를 해 달라고 조른다.
"엄마 아직 잠 안 깼어." 라고 말한 어느 날은 아침부터 짜증에 울고 떼쓰고.



4.
남편 동료 외국인이 왔다.
저녁 먹으면서 영어로 이야기 하고 있는데
애는 아무 것도 못 알아 들으면서
옆에서 실감나게
노오우~ 노오우~
하고 있어서 또 속으로 엄청 웃었다.

영어구나 싶은 생각은 들었나 보다.



5.

여전히 힘들 때도 있지만
내가 누군가의 엄마인 것이 정말 기쁘다.

내가 엄마라니! 내가 엄마라니! 신기한 기분이 든다.

애가 꽤 많이 커서 나아진 것도 많다.


애가 날 좀 무서워 하는 것도 다행이다.
아무 것도 겁나지 않고 막무가내로 힘쓰는 타입이 아니어서 고맙다.

애니까 내 기분은 신경 안 쓰고 하고 싶은 것 해 달라고 엄청나게 떼를 쓰지만
결국 내가 이놈 하면 엄마 기분 나빠지는 것을 꺼려하는 것이 다행이다.

떼 쓰고 울 때는 방에 혼자 가서 울어야 하는 것을 무서워 해서
엉엉 울면서 눈에 눈물이 그렁 그렁 고였다가도
"방에 가서 울고 와. 엄마 밖에서 기다릴께."
하면 놀랄만한 자제심을 발휘하여 뚝 그치는 것이 귀엽고 고맙다.
밖에서도 떼를 쓰면 아무 문이나 가리키며 귀에 대고
"저 방에 들어가서 다 울고 나올까? 엄마 여기 있을께" 하고 속삭이면
바로 그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