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 시절 내가 살던 집은 수용소 같았다.
나를 제외한 모든 사람이 나보다 신분이 높았다.
어떤 사람은 나보다 나이가 많았고
어떤 사람은 남자였다.
난 신분제에서 최하위를 차지하며
그들이 다른 곳에서 풀지 못한 분을 푸는데 사용 되었다.
성질 급하고 화가 많은 그들은 계속 내게 화를 내고
세상에서 받은 울분을 내게 풀었다.
그런 신분제를 강화하기 위하여
"효" "가부장제" "남존여비" 사상이 사용되었다.
그리고 어린이이던 나 보다는 대부분
물리적으로 힘이 더 셌다.
나를 사랑했다고 말했지만
환경은 전혀 그게 아니었고
지금까지도 전혀 나를 사랑하지 않음을
행동으로 말로 보여준다.
그 안에서 살 때는 스톡홀름 증후근 환자처럼
그들이 날 사랑한다고 믿으며
절대 복종했다.
그들이 하는 것은 폭력과 폭언도 나를 위한 것이라고 생각했다.
내가 즐거워 하는 것을 찾는 것은 조금도 허락되지 않았다.
나는 지금도 내가 즐거워 하는 것이 무엇인지 잘 모른다.
가정 폭력의 가해자가 아니라 피해자만 정신과를 찾는다고 한다.
난 내가 정신적으로 고장 나 있음을 이제는 아는데도
선뜻 정신과를 가지 못하고 매일 겪는 증상을 일상적으로 겪으면서
시간을 흘려 보내고 있다.
수용소에서 감정 노비로 살던 나는
노비 주제에 너무 많은 교육을 받았고
스물 여섯
수용소인 것을 모르고 살던 장소로부터 탈출했다.
마지막 폭력이 있었지만
그 덕이었다고 생각하고 있다.
그 후로도 수용소로 돌아와서
간수들과 다시 사이좋게 지내라는 권유를 받곤 한다.
인간을 얼마만큼 억압하면
나처럼 되는 건지...
그게 반대쪽으로 터져 나오면
인연을 끊고 사는 쪽이 훨씬 쉽다는 걸
예전 인연을 다시 잇고 살 수는 도저히 없다는 걸.
하지만 "효" 사상에 찌들어
패륜이라는 생각을 끊어낼 수가 없다.
난 아직도 내가 가진 의견을 순간 순간 말할 수가 없고
내 생각, 내 화, 내 감정조차
시간차를 두고 좀 지나야 깨닫는 삶을 살고 있다.
육아서를 손에 쥐고 읽고 있으면
결국은 '나'를 바라보게 된다.
관계 속에서의 나, 엄마로서의 나,
한 인간으로서의 나.
간장 종지도 안되는 그릇에
개떡 같은 기억밖에 없는 내가
아이를 잘 키울 수 있을까.
완전히 불가능한데
겁대가리 없이 애를 낳은 것이 아닌가.
두려웠다가 괜찮았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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