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똑같은 잠바를 110호 사서 잘 입히다가
120호를 하나 더 샀다.
애는 새로 산 잠바를 좋아했다.
헌 잠바는 좀 마음에 안 들었나 보다.
오늘 배추 뽑으러 간다기에 헌 잠바를 입혀 줬더니
"엄마 이건 투실투실해." 하고 말했다.
뭔 소린가 머리 위로 ?를 띄웠다가 알아듣고 내가 으하하하 웃었다.
내가 옷에 보풀이 일거나 피부가 거칠어지면 "트실트실" 해진다 라고 말을 한 걸
그렇게 알아듣고 말하는 것이다.
'투실투실' 하면 몸이 커져서 배가 빵빵하거나 한 느낌인데
ㅋㅋㅋㅋ
웃겨서 마구 웃고 예뻐해 주었다.
2.
어제 밤에 잘 때는 겨울 이불을 뒤집어 쓰고
엄청나게 큰 뭉탱이가 되어 침대 위를 걸어다녔다.
깔깔 웃으며
"이 뭉태기는 머꼬"
하다가 뭉태기가 표준어가 아님을 깨닫고 웃었다.
애는 이불에서 빠져 나온뒤 내게 안기며
"엄마 그 뭉탱이 사실 나였어." 그랬다.
자려고 누웠다가
애랑 애 이불 찾으러 거실, 방으로 나갔다가
"이불이 없네" 하니
"없다. 없네." 하고 대꾸하는 딸 억양이 완전 나랑 똑같다.
말투도, 입맛도 나랑 똑같은 애를 낳아 키운다.
3.
애가 잠을 자지 않아 결국 마트 가자 하고 다 같이 차를 탔다.
시간이 늦어 애가 차를 타자마자 잘 줄 알았는데
애는 똘망똘망한 목소리로 계속 떠들었다.
나한테 이야기 할 것이 천 가지.
하는 이야기도 다 귀여워서 대꾸를 안하기가 어려웠다.
결국 '엄마 좀 잘 테니 도착하면 깨워줘' 하고 말했다.
그러자 애가 그 순간부터 내게 말을 한마디도 걸지 않았다.
늘 기특하고 고맙다.
내 말을 잘 들어 주려고,
그리고 내게 친절 하려고 최선을 다하는 딸이다.
나도 노력하고 있다.
애가 마트 가겠다고 차를 타러 가면서
엘레베이터에서 남편이 발을 일자로 벌리고
"아빠는 이런 거 할 수 있다!" 라고 말했다
그 순간부터 아빠 흉내 내려고 발을 일자로 벌리느라
넘어지고 구르고 난리 법석이다.
뭐든 떠들썩해서 웃겨 죽겠다.
애는 뭘 특별히 하지 않아도
끊임없이 뽀작대며 뭘 하는 통에
같이 있는 시간 내내 나를 웃긴다.
4.
저녁 먹으면서 하는 이야기도 다 너무 귀여워서
"아이고 엄마 심쿵했어. 언제까지 엄마 심쿵 시킬꺼야"
하고 혼잣말을 했더니
"영원히 엄마 심쿵 시킬꺼야."
이러고 대답한다.
5.
애한테 "도레미파솔라시도" 라고 가르쳐 줬다.
말로 도레미파솔라시도 이렇게 불러줬다.
토요일이던가?
애가 피아노 앞에 앉아 악보를 만드는 모양이었다.
작은 종이 한 장, 볼펜 하나를 들고 종이에 "고" 라고 적었다.
애는 "도"가 "고"로 들리는 모양이다.
발음이 구분이 안 가고 들리는 대로 적는 건데
어쨌든 들리는 대로 글자를 적을 줄 아는 것이 너무 신기하다.
내가 한 글자도 가르친 적이 없는데 글자를 쓸 줄 안다.
듣는 것도 있고 적는 것도 있다.
언젠가 친구 00는 글자를 다 알아서 글자는 걔가 읽어야 한다고 이야기를 하더니
정확히 2주 후부터는 간판을 다 읽게 되었다.
정확도는 떨어지지만 어렴풋이 읽는다.
그리고 자신만만하게
이젠 00는 못 읽고 자기가 글자를 다 읽는다고 한다.
자신만만한 것이 귀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