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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SD0130MAI

오랜만에 정말 많이 많이 행복한 하루를 보내고.

마음속에 마구 기쁨이 차서 기분이 좋다.

멍하게 있는 시간에 머릿속에 들어오는 생각이

전부다 기분 좋은 생각이라 놀랍다.

역시 나는 좋은 사람들이 주는 좋은 기운에

영향을 많이 받는 구나.



남편의 40번째 생일.


미역국 끓이고 부추전, 갈비찜, 도토리묵무침으로

상을 차렸다. 케잌과 생일 초를 켜고

생일 선물 열 다섯 개 증정식을 하였다.


딸내미가 눈뜨고 제일 먼저 한 말은

"아빠 생일날이니까 내가 한복 입을래.

유셔이 섕이 아니고 아빠 섀이" 하고 말했다.

니 생일 아니고 아빠 생일인 것을 알면서

한복은 왜 니가 입냐.

 

애는 한복을 입고 같이 케이크 초를 후 불었다.


커피를 마시고, 도서관에 가서 책을 산더미 같이 빌리고

천문 동아리 전시회를 보고,

도서관 소강당에서 울려퍼지는 피아노 연주를 들었다.

생일 기념으로 세차를 하겠다고 해서 차를 맡겼다.

국수 먹고 마트도 갔다. 후식커피와 아이스크림도 먹고

남편은 유모차를 가지고 1층에서 기다리는 동안

애 손을 잡고 무빙워크를 올라갔다가 내려왔다.

애는 슬슬 졸린지 무빙워크 올라갈 때부터

말이 멈추었다.


집에 들어오는 차 안에서 애가 잠이 들었다!

이거야 말로 최고!

두 시간 동안 빡세게 청소하고 씻고 화장하고,

낮잠을 좀 길게 자는 애를 깨워서 샤워를 시키고 옷 입히고


십 년 만에 선배랑 언니를 만났다.

아 뭐 이렇게 반가운지...

이게 오랜만에 봐도 오랜만에 본 것 같지 않은 기분이

이 사람들이 누굴 봐도 붙임성이 좋아서 그런 건지.

이 사람의 특징인 모양이다.


심지어 애가 이불을 언니에게 가져다 주었다.

언니는 그게 무슨 의미인지 모르겠지.

난 그걸 보고 진짜 마음이 가득 행복해 졌다.

완전히 지난 평생 ㅋㅋㅋㅋㅋ 양 손에 끼고

누가 어떻게 할까 난리인 그 소중한 이불을...!


멤버 두 명을 더해서

좋은 식당 가서 맛있게 저녁을 먹었다.

딸내미는 내 무릎에 앉아서

큰 소라 고둥 한 접시를 까 달라고 해서 전부 다 먹고

한 접시 더 달라고 해서 소복히 담아온 걸 전부 다 먹고

(애기가 이렇게 많이 먹어도 되는 거야? 하는 걱정까지 들어가며)

생선을 노릇노릇 구운 것 먹고

새우 튀김 꽁지까지 맛있게 냠냠 두 개 먹고

밥을 녹찻물에 말아서 한 그릇 다 먹었다.

내 밥을 전부 다 먹어 놓고

내가 자기 밥 한 숟가락 떠 먹으니

"엄마 내 밥 뺏어 먹지 마." 하고 말했다.

그리고 내가 조금 덜어 먹고 있는 것을 떠 먹으며

"같이 나나 먹는 거야" 하고 말했다.


그리고 집에 와서 오랜만에 한잔 하면서

수다 왕창 이야기 왕창 하고

그 이야기에 공감대가 있어서 반갑고.

이야기를 나눌 때마다 마음 속에 행복 지수가 마구 쌓여 올라갔다.


딸내미는 컨디션이 괜찮았는지 떼도 한 번 쓰지 않고

정말 얌전히 옆에서 혼자서 왔다 갔다 하면서 잘 놀고

우린 수다 잘 떨고

파하고 나서 데려다 준다고 남편이 집에서 나가자

"아빠랑 자끄야" 하면서 아빠를 찾으며 울었다.


애가 금방 잠이 들어서

나와서 거실을 치웠다.

남편이 들어오더니 "벌써 자?" 하고 놀랐다.

애는 오늘 왜 이렇게 수월한지...


밥 잘 먹고 떼 안 쓰고 말 잘한다고 애 칭찬을 들으니

괜히 기분이 좋은 것이 어쩔 수 없는 애 엄마.


곱씹으며 좋아하고 있고

남은 이틀 정말 열심히 짬이 나는 대로 같이 놀 꺼라고... 다짐 중.....



그리고 어젯밤 애가 토끼 귀가 토끼 귀인 것을 아는 것을 알았다.





2.

애 때문에 하루 종일 웃은 것.

애가 "~~ 해 버렸어" 하는 말을 정말 자주 썼다.

내가 이거 밀어 버렸어. 내가 이거 앉아 버렸어.

내가 이거 해버렸어.

이런 식으로. 아기 발음이라 옹알이 같기 때문에

"~~ 해버렸어" 하고 이야기 하면

이게 내 말버릇인가? 내가 ~~ 해버렸어 하고 이야기를 하나?

잠깐씩 생각을 하고 또 잊어버렸다.


어제 애가 발음이 분명해 지고 나서 보니 갑자기

"내가 이거 해부러써" 하고 말하는 것이었다.

그동안 애가 하고 싶었던 발음은 "해버렸어"가 아니라

"해부러써" 였던 것이다.

"엄마 이거 내가 해부러써" 하는데

완전 전라도 아가씨가 아닌가. 으하하하하.

너 좀 낯선 듯. ㅋㅋㅋㅋㅋㅋ


하루 종일 애가 그렇게 말할 때마다 웃겨서 미칠 것 같았다.

그 전부터

"엄마 이거 놀이 하게" 하고 말하면 내가 엄청나게 웃었다.

자연스러운 전라도 사투리.

어린이집 선생님께 한 번 "얘가 "**하게" 하고 말해요" 라고 말했는데

선생님은 그게 너무 당연하시니 '엥? 저 엄마 뭔 소리를 하시는 거지?' 하는 표정이었다.

경상도 엄마가 키우는데 애는 전라도 사투리를 자연스레 구사하니

난 너무 재미 있는 것이다.


 


 

3.

아침에 일어나서 조그맣게 딸내미랑 싸웠다.

이면지 종이를 많이 달라고 하길래 많이 줬는데

종이가 붙어서 잘 겹쳐져 있으니 한 장으로 보였던 모양이다.

"많이죠" 하길래 "이거 많은 거야. 자 만져봐" 했더니

화를 내고 떼를 쓰는 것이었다. 나도 화가 나서

"에잇" 하고 안방으로 가자

엉엉엉엉 울었다.


남편이 자다가 일어나서 "응? 무슨 일이야. 울지마."

하니 "아빠 아니야 저리 가" 하며 남편한테 화낸다.

(아 이건 진짜 버릇을 고쳐 놓을 꺼다.)

내가 좀 진정하고 다시 서재에 가서

"만져봐. 많지?" 하니까 그제야 많구나 하고 인정.

많이 줘. 할 때마다 한 묶음씩 더 떼어 주었다.

애가 좋다고 할 때까지.



4.

일요일.

커피집 갔을 때 남편이 두리번거리며

우리를 찾는 것이 보여서

"여보~" 하고 부르고 손을 흔들었더니

애도 옆에 서서 "여보~!" 하는 것이었다.

"아빠지 무슨 여보야." 했더니

"아닌데 여본데" 하고 있다.

 


 


5.

아침에 커피 집에 갔다가

선배랑 언니랑 다시 또 만났다.

애가 나한테 "어제도 오셨지? 샤워 하고" 하고 말해서

생각해 보니 어제 애가 샤워하고 나서 오셨다.

기억을 잘해서 대단하다.




6.

도서관 갈 때마다

"책 빌리러 가자" 하고 말했더니

애는 그동안 '어디로 가자' 하듯이 

"'책빌리'로 가자" 하고 알아듣고 있었던 모양이다.


아침에 차를 타고 도서관을 지나갈 때

손가락으로 가리키면서

"이건 책빌리야!" 하고 말했다.

ㅋㅋㅋㅋ 웃으면서

"'책빌리'는 이름이 뭐게~ 도서관!" 하면서 지나감.




7.

아침에 애 입에 빵 넣어 주다가

내가 커피 컵을 쳐서 커피 우유를 한잔 다 쏟아 버렸다.


애가 나한테 다정하게

"엄마가 잘못했지!!!!" 그랬다. 푸하하.

난 애한테 이런 말 절대 안했다.. 뭐 쏟으면 '괜찮아' 그랬지.

그러고 내가 커피를 뒤집어 쓴 옷을 벗어 세숫대야에 담으니

"내가 빨래 할꺼야" 하고 욕실로 쫓아왔다.

세면대에 세숫대야를 놓고 물을 틀어 놓고 그 앞에 아기 발판에 올라서서

아기가 내게) "지지 묻었지?"

아기가 내게) "내가 마르면 입혀 주께" 하고 다정하게 말했다.


번dog맨 옷 입으려고 떼 쓸 때마다

"지지 묻었지? 엄마가 빨래 해서 마르면 입혀주께" 하고 말했더니

그걸 나한테 고대로 써먹고 있는 것이다.


평생 이쁜 짓은 세 살까지 한다는 소리를 많이 들었다
그동안 내가 이뻐하긴 했지만

너무 힘들어서 뭐 이게 이쁜 짓을 하는 건가 했는데

요즘은 확실히 이쁘다.

하는 게 너무 웃겨서 계속 웃게 된다.


내 앞에 앉아서 "엄마가 최고 이뻐" 하고 말해줄 때나

내가 어디 부딪쳐서 아팠 던가 했더니

"미안해 울지마." 미간을 손가락으로 만지며

"인상 쓰지 마. 내가 눈물 닦아 줄꺼야" 하고 말하는 것도.

(얘는 미안해가 미안할 때 쓰는 말이 아니고

울 때 달래는 말이 미안해 인줄 안다)



아침에 여섯시 40분부터 일어나서 깨우면서

"일어 섯!" 하고 있는 꼬마지만.

아 정말 이쁘긴 이쁘다.

이런 게 행복이구나. 지금이 정말 행복한 시간이구나

하는 생각이 저절로 들게 만든다.